“오늘은 보름이군.”
언제나처럼 주인을 깨우기 위해 주인의 방에 들어섰고 그 주인이 눈을 뜨자마자 뱉은 말이었다. 자신의 머리를 문지르며 나지막이 뱉은 주인의 목소리에는 묘한 짜증이 묻어있었다.
이 폐가 같은 건물은 나와 주인이 머무는 거점으로. -이걸 임시라도 혼마루라고 하고 싶진 않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겉모습에 비해 안쪽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먼지가 많이 쌓이거나 삐걱대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형태는 제대로 잡혀있었고 처음에야 생활했을 때야 좀 신경 쓰였지..익숙해지고 나면 생활하는데 크게 문제 될만한 것은 없었다. 자신의 주인은 곁에 누가 있던 신경 쓰지 않는 편인 것 같으면서도…해가 저물고 온 세상이 어둠에 물들 즘에는 해가 떠 있는 낮보다 신경이 곤두서있는 편이었다. 물론 그 변화가 크게 다르지 않아 미묘하긴 했지만..
그리고 그것이 가장 뚜렷한 날은 달이 가득 찬 만월. 즉 보름달일 즘이었다.
“그렇다면..이번에도 인가.”
그의 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검인 오니마루 쿠니츠나가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니마루의 말에 그의 시선이 오니마루에게 향했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시선을 돌렸고 무거운 입을 열리며 짧은 답이 흘러나왔다.
“그래. 오늘 밤도 나를 부르지도 말고 찾지도 마. 어차피..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거니까.”
“오늘도 이유는 알려주지 않을 건가.”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대답에도 오니마루는 담담했다. 그러나 속은 그렇지 않은 건지 그에게 이유를 물었으나…..그는 답을 해주기는커녕 하! 하며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고 시선을 다시 오니마루를 향했다. 질린다는 듯이 표정을 구기면서.
“이유가 꼭 필요한가? 어쩌지. 나는 네게 대답해 줄 생각이 없거든…..그러니까 궁금해도 내게 묻지 마. 대답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말고. ….또. 사람처럼 굴지 마. 네가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래봤자 너는 검일뿐이니까.”
주인에 대해 궁금하는 것은 도검 남사로서 당연한 일임에도 주인은 그것이 영 마땅찮은 듯했다. 검이라면 검 답게 굴라면서도 가끔은 모순적인 행동을 취할 때가 있어서 메모를 하며 주인을 기록해둔다. 그의 말에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자신이 인간의 육체를 얻고 감정까지 가졌다고는 하나… 검을 검 취급하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오늘도 그에게 이유를 듣지 못할 것 같으니 오니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본다.
“알았다. 아직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주인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거겠지.”
평소보다 특히 예민한 주인을 건드리는 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오니마루는 천천히 주인의 방을 나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언젠가... 그에게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 — —
보름이 되면 주인은 방에서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항상 하던 대련도 스스로 해야만 했다. 혼마루 안에서만 있어 봤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거점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괜히 주인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힘든 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나처럼 거점을 나와 단련을 하려 한 것뿐인데 설마 검비위사를 만나게 될 줄은 조금도 예상을 못 했다.
다행스럽게도 주인의 단련은 언제나 난이도가 -매우- 높았고 종종 다른 혼마루의 도검 남사들과의 연련에 참가하도록 하며 다수와 싸우는 법을 훈련시켰다.
그렇기때문에...... 다수로 싸우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으나... 문제가 있다면 지금은 밤이었고 태도의 특성상 달이 아무리 밝더라도 밤눈이 어둡다는 점이었다. 또한 검비위사는 보통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 도검남사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결국 힘이 부쳤고 결국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검비위사의 공격에 큰 부상을 입은 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본체를 땅에 꽂은채로 몸을 지탱한다. 이대로는 끝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하………..진짜. 귀찮게 구는군.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을 추가해둬야겠어.”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별조차 숨어버린 밤에 뜬 보름달은 그 달빛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혀질 정도로 유난히 밝았다. 그렇기에 밤이어도 잘 보이는 편이었는데 오니마루는 눈앞의 '존재'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목소리는 제가 익히 알고 있는 주인의 목소리였지만......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습은 낯설었다.
달빛을 받음에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 마냥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들은 평소보다 더욱 길어져 있었고 양 쪽 머리에 돋아난 크기가 다른 검은 뿔들은 자신에게는 꽤 익숙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달빛을 등져 그림자가 진 얼굴에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은 평소의 색보다 더욱 짙어져 있었고 동공은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결코 '인간'의 모습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저릿저릿하게 온몸을 내리누르는 위압감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위험했다. 머릿속에서 붉은색 적신호를 보냈다. 지금 당장 도망가라고.
본능이 보내는 적신호에도 오니마루는 도망가지 않았다. 몸이 굳은 것이 한몫 하긴 했지만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온몸을 내리누르는 위압감에 짓눌리더라도 꼿꼿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런 오니마루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긴 했는지 귀찮다며 미간을 찌푸리던 그의 얼굴에 호선이 그려졌다. 이를 들어내며 웃자 보이는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나 턱을 쓰담는 그의 손끝의 길어진 손톱이 마치 짐승의 것만 같아 눈에 띄었다. 가만히 턱을 쓰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호오.... 시선을 피하지 않은 건 칭찬해 주마.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평소보다 낮아진 그의 목소리에 만족스러움이 감겼다. 주변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조금 부드러워져서 오니마루는 순간 잊었던 숨을 토해내듯 뱉어낼 수 있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숨을 참아왔다는 것조차 인지 못했을 정도로 긴장해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이것들부터 정리하고 돌아가 보도록 할까.”
오니마루를 향했던 시선이 돌려지며 오니마루가 상대하고 있었던 검비위사에게로 향했다. 검비위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형의 존재'를 경계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오니마루가 불리했던 것이 자명했지만 주인인 아카츠키의 훈련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검비위사들은 작더라도 부상을 입고 있었고 그 수도 조금은 줄어있기도 했다. 물론...그들을 상대한 오니마루의 상태가 더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얼굴에 걸린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그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오니마루가 어렵게 상대했던 것이 무안하게도 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도 검비위사들은 무력하게 쓰러져 검은 재로 바스러져 사라졌다.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진 검비위사들을 오니마루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는 그저 검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 많은 수가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쓰러질 수 있단 말인가...단순히 강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눈앞에서 보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오니마루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놀라운 그의 강함을 눈앞에서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그의 본래의 힘을 조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더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겠지....그도 그럴게 그의 표정은 따분함 그 자체였다. 방금의 일격이 그에게는 조금의 자극도 되지 않은 듯했다. 가볍게 검을 정리한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을 내려다봤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지. 설마. 일어나지 못한다고는 못할 테고......”
그의 한심하다는 감정이 묻어 나온 말에 오니마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지금 도저히 일어날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풀려서 쓰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자신에게는 큰일이었기에.
고개를 숙인 채 오니마루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아카츠키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검을 짐덩이를 들듯이 들어 어깨에 걸쳤다. 가볍게 드는 모양새에 놀라 오니마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무겁지도 않은지 아카츠키는 여전히 따분하다는 얼굴을 하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얼마안가 내내 조용했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여기서 나가떨어져서는 곤란해. 너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거든. 괴물의 검으로써. 괴물을 베기 전까지 부러질 생각은 하지 마. 내가 널 데려온 값은 제대로 하도록 해라. 오니마루 쿠니츠나.”
“....주인. 당신은 대체 뭐지?”
“하. 궁금해하지 말고 답을 해줄 거라 기대하지도 말라고 했건만... 뭐 됐다. 너에게도 제대로 알려둘 필요가 있겠지.....”
귀찮지만....이라고 덧붙이며 아카츠키는 덤덤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알려야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되것이다.
“............나는. 스사노오의 계통의 후손으로 신의 피를 물려받은 반신(半新)이자 오니 사냥을 업으로 하던 자. 그리고....빌어먹을 저주 또한 받았지. 나는 사람도. 신도. 오니도 아닌 그냥 괴물(化け物)이다. 네 역할은 그 괴물을 베는 것. 뭐...오니를 베었다는 설화가 있다고 하고 그건 진실인 것 같으니 불가능하진 않겠지. 너는 쉽게 망가지지 않고 찰나를 살지 않으니..... 내가 단련만 잘 한다면 쓸 만해지겠지. 나는. 기대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날 실망시키지말도록.”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오니마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 너는.....나로 인해 끝내고 싶은 건가.”
오니마루의 말에 아카츠키는 제대로 알아들었군.이라 말하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그래. 나는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그러니....내 이야기를 끝내줄 무언가가 필요하지. 너는 내게 남은 마지막 수단이고.”
자신의 주인의 말에 오니마루는 입을 열다가 다시 다물었다.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는 침묵을 지켰고 아카츠키 또한 그의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긍정하던 부정하던 그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달빛이 유난히도 밝은 밤. 바람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다.
오니마루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가슴이 답답한 것 같기도 했고 입이 턱 막히는 기묘한 감각. 이것을 나중에는 무엇인지 알 수 있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오니마루는 주인에 대해 알고 싶다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알고 싶다 바란 것은 아니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강해져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차오른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만약. 만약에 그를 베는 것이 성공한다면.....그 이후에는...어떻게 되는 거지?
그들의 거점으로 돌아가는 길.
오니마루와 아카츠키 어느 누구도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밝은 달빛이 두 사람을 비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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